마루 밑 바로우어즈

마루 밑 바로우어즈 - 8점
메리 노튼 지음 /시공주니어

http://sahngoh.tistory.com2014-01-09T14:15:240.3810
구두속에사는 난쟁이들
구두속에사는 난쟁이들 - 8점
메리 노턴 지음/유진
http://sahngoh.tistory.com2014-01-09T14:19:170.3810





2010년 유명한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마루 밑 아리에티, The Borrowers>가 개봉되었고 사람들은 10센티의 작은 소녀 아리에티때문에 웃기도 하고 눈시울도 적셨습니다. 함께 본 곁지기의 눈가에도 작은 이슬이 맺혔으니 아리에티는 가슴 따뜻함 그 자체였습니다. 미야자기 하야오에 의해 세상에 크게 알려진 아리에티는 사실 1950년대 메리 노턴에 의하여 처음 탄생했습니다. 영화에서는 느끼지 못했지만 책을 읽고 있노라면 이 작고 발랄한 작은 아가씨는 비슷한 시기에 숨어지내던 안네 프랑크를 떠올리기에 충분합니다. 외롭고 위험한 세상을 등지고 꼭꼭 숨어 살면서도 희망을 붙잡고 꿈을 꾸는 소녀라는 점에서 말입니다. 지금도 영화의 마지막 언저리에서 아리에티가 소년의 손가락 붙잡고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아른거려 가슴이 몽클해집니다.




영화 <마루 밑 아리에티, The Borrowers>의 한 장면




그런데 지난 주 아들과 손잡고 동네 구립 도서관에 갔다가 두 권의 책을 발견했답니다. 감수성을 자극하던 영화 속 아리에티의 원조임을 알아보고 얼마나 반갑던지요. 40을 넘긴 중년의 아저씨가 말이죠. 참고로 출판사의 마케팅은 메리 노턴에게 동화작가라는 타이틀을 달아주고 초등생 저학년에 타케팅을 하고 있습니다.



소설을 간단히 소개하면 《마루 밑 바로우어즈》에서 《구두속에 사는 난쟁이들》로 이어지는 일련의 소인 아리에티 가족의 좌충우돌 생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마루 밑 바로우어즈》의 내용을 상당 부분 각색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은 아시다시피 그동안 살고 있던 집에서 탈출하면서 끝나죠. 그 탈출 이후부터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을 때까지의 여정을 《구두속에 사는 난쟁이들》에서 그리고 있습니다. 두 편 모두 케이트와 메이 부인이 등장하는 데 아리에티와 조우했던 그 소년의 누이로《마루 밑 바로우어즈》에서 케이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주체입니다. 비슷하게 《구두속에 사는 난쟁이들》에서도 아리에티를 도와 새로운 보금자리로 안내했던 톰 소년이 어느덧 할아버지가 되어 케이트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액자구성을 띄고 있습니다.



《마루 밑 바로우어즈》의 마지막 의미심장한 복선 - 아리에티의 일기장의 글씨체와 소년의 필체가 같다 - 에 헛웃음을 쳤다가 속편에서 소인과 직접 조우한 톰 아저씨의 등장으로 전작의 복선은 걷히게 됩니다. 그래도 케이트의 믿음을 지켜주고 싶은 아주 조금의 순수함은 남아 있었나 봅니다.



영상미와 스토리가 극대화되어 어른의 메마른 감수성을 샘솟게 한 영화와는 달리 소설은 어른들의 시선과 아이의 시선 그리고 생존을 위협하는 인간과 바로우어즈(소인)의 각각 두 시선이 서로 충돌하며 왁자지껄 흘러갑니다. 인물들의 성격도 영화와는 조금씩 다른데 소설 속의 엄마 호밀리는 비슷한 캐릭터지만 아리에띠와 아버지 팟은 좀 더 적극적입니다. 아버지 팟은 소피 고모와 담소를 즐기며 팟은 먼저 소년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하고 소년이 가져온 책을 읽기도 하고 오소리 굴로 이사를 간 친척에게 편지를 써 부탁하기도 합니다.



잠시 순수한 상상력을 잠시 내려놓고 아저씨의 시선으로 돌아와 현실적인 면을 억지로 들춰봅니다. 곧바로 멸종해가는 종족의 그늘이 드리웁니다. 오로지 세 가족이 마루 밑에 숨어 사는 지독히도 외로운 삶이고, 앞서 말한 안네 프랑크가 그랬던 것처럼 애써 발랄하지 않으면 고독에 잠식당할 것만 같은 불안한 삶 말입니다. 그래서일까 싶네요. 남편이 전쟁에 나가고 혼자 남아 네 아이를 돌봐야 했던 메리 노튼의 마음은 우려가 되어 호밀리에게 가 투덜이 엄마가 되었고 불안을 떨치기 위한 몸부림은 아리에티에게서 발랄함으로 표현되었으며 그럼에도 지울 수 없었던 '불안'은 팟에게 투영된 듯한 느낌도 지울 수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동화라는 것이 참 잔인하고 슬프지요. 그림 형제나 안데르센의 동화도 그 속엔 잔인한 면이 감추어져 있었고, 최근 들어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이란 부제를 달고 어른들을 위한 동화 시리즈로 인기를 끌기도 했답니다. 무시무시한 이야기는 시대가 만들었지만 점차 아름답게 각색되고 그런 이야기가 어린이들에게 꿈을 꾸게 하는 자양분이 되었으니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어두운 얘기는 어울리지 않네요. 굳이 애써 어두운 면을 보려고 눈에 힘을 주다니 저도 참 별납니다.



영화에서 메리 노턴의 이 동화로 이어지면서 그동안 메말랐던 감수성도 느껴보고 멋진 상상도 해보면서 즐겁게 보낸 것 같습니다. 마음이 조금은 젊어졌을까요? 가까운 미래에 두 아들에게도 아리따운 아리에트를 소개해주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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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1.10 09:2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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