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남한산성 - 10점
김훈 지음/학고재
http://sahngoh.tistory.com2013-10-25T06:32:050.31010




1616년 누루하치가 후금을 세우고 칸으로 우뚝 섰고 그로부터 20년 후 아들 홍타이지는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황제의 자리에 오릅니다. 화친을 거부하고 숭명배금의 고수한 조선이 괘씸하고 명을 치기 위해 산해관을 넘을 때 배후를 칠 수 있다고 여긴 홍타이지는 중국 통일을 이루기에 앞서 조선을 복속시키기 위한 전쟁이 이른바 병자호란(丙子胡亂)입니다. 청군이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자 인조는 세자와 함께 남한산성으로 들어갔고 두 달 만에 스스로 걸어 나와 홍타이지 앞에 무릎을 꿇고 호령에 따라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땅에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도구(三拜九叩頭)를 행합니다. 조선 역사상 가장 뼈아픈 패배이며 세계사에서도 보기 드문 치욕입니다.


인조가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에게 항복하는 장면, http://ko.wikipedia.org



훗날 오랑캐의 나라를 국가로 인정하기 싫어하는 조선의 역사가는 전쟁이 아닌 호(胡)의 난(亂)으로 기록하였습니다. 서로 대등한 정규전 성격의 전쟁이 아닌 호인(胡人)들이 상국(上國)인 조선에 일방적인 반기를 들고 침략해 들어온 것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임진왜란(壬辰倭亂)과 정묘호란(丁卯胡亂)도 같은 맥락입니다. 병자년의 치욕을 인정할 수 없는 고집스움인지 조선과 명이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을 거치면서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에서 당한 패배라서 인정할 수 없음인지 제 짧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정하지 않으니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으니 길이 없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삼전도비 훼손사건, 2007




몇 해 전엔 삼전도비 훼손사건이 있었습니다. 참담한 심정이야 이해가 갑니다만 해를 손으로 가릴 수 있겠습니까? 굴욕적인 과거의 흔적을 없앤다고 없어질 리 없겠지만 저리 두고 그날을 되새김이 더 낫지 않겠나 싶습니다. 





말로써 정의를 다툴 수 없고, 글로써 세상을 읽을 수 없으며, 살아 있는 동안의 몸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을 다 받아 내지 못할진대, 땅 위로 뻗은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으리."


작가 김훈의 말입니다. 인조실록과 산성일기는 전쟁 중 오고 간 굴욕적인 편지의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낯 뜨거운 기록이며 인조가 간 길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록입니다. 이 책은 그 기록을 토대로 굴욕의 흔적이 깃든 남한산성을 김훈이 자전거로 몇 날 며칠을 배회하며 채집한 기록이고, 내 약소한 조국의 수치스러운 기록을 글로서 읽을 수 없기에, 조선이 걸어온 수백 년의 길을 애써 거슬러 올라간 아픔의 기록입니다.




"풀리는 강을 강을 바라보면서 칸은 망월봉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조선 행국의 망궐례를 생각했다. 홍이포의 사정거리 안에서 명을 향해 영신의 춤을 추던 조선 왕의 모습은 칸의 마음에 깊이 박혀들었다. ···난해한 나라로구나······. 아주 으깨지는 말자······. 부수기보다는 스스로 부서져야 새로워질 수 있겠구나······." 270쪽



칸의 마음에 김훈이 들어갔습니다. 전쟁이지만 전쟁이 아닌 강자가 약자를 향한 교육입니다. 절대적인 힘의 차이를 칸인 홍타이지도 조선 임금인 인조와 주사파 최명길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버티고 버팁니다.




<남한 산성 고지도>




"버티는 힘이 다하는 날에 버티는 고통은 끝날 것이고, 버티는 고통이 끝나는 날에는 버티어야 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었는데, 버티어야 할 것이 모두 소멸할 때가지 버티어야하는 것인지 김류는 생각했다. 생각은 전개되지 않았다. 그날, 안에서 열든 밖에서 열든 성문은 열리고 삶의 자리는 오직 성 밖에 있을 것이었는데, 안에서 문을 열고 나가는 고통과 밖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고통의 차이가 김류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김류는 느꼈다. 93-94쪽"



영의정 김류(金류 1571-1648)는 화친에 반대했다가 살고자 전향을 한 인물로 기회주의적인 자입니다. 힘의 차이가 절대적인 상황에서 버틸 수 밖에 없는 현실인데 척화파 최명길은 맞서고 또 맞서길 바랍니다. 대항과 항복 사이에서 위악(僞惡)과 위선(僞善)의 말들이 서로 물어뜯다 결국 위악은 높이 치솟고 위선은 가라않습니다. 임금도 백성도 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길가에 백성의 시체가 즐비한 상황에서 버티고 맞서다 임금이 죽었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 그 길을 모아 기록하면 역사가 됩니다. 인조가 살던 시간과 남한산성이라는 공간은 글로 축적되어 역사가 되었습니다. 역사는 사람이 기록하고 기록하는 이의 사관(史觀)에 따라 기록할 만한 사건만 기록하는 것을 우리는 모르지 않기에 불편한 남한산성의 기록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책은 저자 김훈의 글을 쫓는 일련의 과정에서 만났습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김훈의 시선이 그리고 글로서 세상과 다투지 않겠다는 그의 글이 시리도록 아름답습니다. 다만 김훈의 말과 임금의 말이 그리고 신하의 말과 무지렁이 백성의 말이 모두 다르지 않아 부자연스러움도 없지 않습니다. 모두 아름다우니 말입니다. 홍타이지가 인조에게 보낸 편지를 아래에 옮기며 먹먹해진 가슴을 쓸어봅니다.


네가 기어이 나의 적이 되어 거듭 거스르고 어긋나 환란을 자초하니, 너의 아둔함조차도 나의 부덕일진대, 나는 그것을 괴로워하며 여러 강을 건너 멀리 내려와 너에게 다다랐다.

나 의 선대 황제 이래로 너희 군신이 준절하고 고매한 말로 나를 능멸하고 방자한 침월로 나를 적대함이 자심하였다. 이제 내가 군사를 이끌고 너의 담 밑에 당도하였는데, 네가 돌구멍 속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걸고 싸우려 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냐.

네가 몸뚱이는 다 밖으로 내놓고 머리만을 굴속으로 처박은 형국으로 천하를 외면하고 삶을 훔치려 하나, 내가 너를 놓아주겠느냐. 땅 위에 삶을 세울 수 있고 베풀 수 있고 빼앗을 수 있고 또 구걸할 수 있다. 그러나 삶을 훔칠 수는 없고 거저 누릴 수는 없는 것이다.

너는 명을 아비로 섬겨, 나의 화포 앞에서 너의 아비에게 보이는 춤을 추더구나. 네가 지금 거꾸로 매달린 위난을 당해도 너의 아비가 너의 춤을 어여삐 여지기 않고 너를 구하지 않은 까닭이 무엇이냐.

너 는 스스로 죽기를 원하느냐. 지금처럼 돌구멍 속에 쳐박혀있어라. 너는 싸우기를 원하느냐. 내가 너의 돌담을 타 넘어 들어가 하늘이 내리는 승부를 알려주마. 너는 지키기를 원하느냐. 너의 지킴이 끝날 때까지 내가 너의 성을 가두어주겠다.

너는 내가 군사를 돌이켜 빈손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느냐. 삶은 거저 누릴 수 없는 것이라고 나는 이미 말했다. 너는 그 돌구멍 속에 한 세상을 차려서 누리기를 원하느냐. 너의 백성은 내가 기른다 해도, 거기서 너의 세상이 차려지겠느냐.

너는 살기를 원하느냐. 성문을 열고 조심스레 걸어서 내 앞으로 나오라. 너의 도모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말하라. 내가 다 듣고 너의 뜻을 펴게 해주겠다. 너는 두려워 말고 말하라.


284쪽






실록 요약본 - <남한산성> 발췌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3.10.28 11:4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