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각의 제국
미각의 제국 - 6점
황교익 지음/따비
http://sahngoh.tistory.com2012-04-07T00:03:070.3610



"내 안에 들어오는 음식을 좀 더 깊게 느끼고 싶었다. 그 느낌의 흔적들이다."


저자는 미각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위의 글로 운을 떼고 있습니다.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 글귀와 소탈한 책의 재질 그리고 디자인에 반해서 찜 해두었다가 이번 달 독서리스트에 추가했고 제법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인간은 원초적 본능이 있는데 비교적 참을 수 있는 성욕이 가장 아래에 있고 가운데 식욕이 있으며 가장 꼭대기에 수면욕이 있습니다. 그 중 식욕은 "오늘은 무얼 먹을까?"라는 매일 반복되는 고민이 말해주듯이 기호와 잘! 먹겠다는 욕구가 점차 강해지고 있습니다. 과정이야 어떻든 한국은 이제 굶어 죽는 걸 걱정하는 사람은 드문 건 사실입니다.


아는 만큼 보고 먹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정말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더구나 요즘엔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다니니 누구나 할 말이 많고 스마트합니다. 그런데 정말 스마트하게 잘 보고 잘 먹고 있는지 한 번쯤은 의심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발효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서 김치에 관한 실험이 생각납니다. 같은 재료와 양념을 주고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김치를 만들도록 하고 어느 정도 숙성 후 맛을 보았더니 전부 다른 맛을 났었는데, 그 이유가 사람의 손에 있는 각기 다른 미생물이 발효균과 화학 작용을 일으켜 제각각의 맛을 결정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손맛의 비밀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은 공장에서 비닐장갑을 끼고 같은 맛의 김치를 대량 생산! 하니 어머니의 그 손맛이 사라진 지 오래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은 경제화·산업화로 밖에서 끼니를 해결하게 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나타나면서 위와 같이 획일화되고 공장화된 맛 뒤에 숨은 미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책장을 넘기며 하루 12시간 이상을 회사에서 근무하면서도 식당에서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 빨리빨리를 외치며 나오자마자 폭풍 흡입을 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어쭙잖은 지식도 돌이켜보면 결국은 설탕 숭배였습니다. 에둘러 글이 길어졌는데 조금은 거창하게 말하면, 그동안 산업화에 획일화되고 공장음식에 길들여진 우리 입을 더 늦기전에 이제는 되돌려받을 때임을 느낍니다.



책을 조금 이야기하면, 맛칼럼니스트의 직업 때문인지 글은 간결하며 비유가 적고 직설적이라 빨리 읽힙니다. 보기 좋은 것, 단맛 강한 것 좇다가 진정한 맛을 잃어가는 사례가 가득합니다. 하나하나 굳이 이곳에 옮기진 않겠습니다만 적잖은 글에서 안타까움을 선물 받았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 《미각의 제국》인 것도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영화 <감각의 제국>에 흐르는 반 제국주의 시선과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역설입니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에 사라지고 잃어버린 미각의 기본 그리고 흔히 먹는 음식과 그 식재료의 현주소를 가감 없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실 소개하고 있는 음식이 조금 더 많았으면 하는 욕심도 없지 않습니다.


돈 안 되며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제맛을 낼 수 있는 식재료는 점점 사라지고 있으며 방송에서 넘치게 소개되는 맛집은 대다수가 사기임을 우리는 <트루맛 쇼>를 보고 알게 됐습니다. 진정한 맛집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 입니다. 음식산업에 '양심'은 필연적이며 결국엔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이 의미 없다는 걸 알아야 할 겁니다. 특히 맛집을 소개하면서 식당의 실내 장식과 멋드러진 음식 사진에 비하여 정작 맛에 대한 이야기는 한 두 줄로 일축하며 그저 맛있다는 식의 글을 남발하는 블로거들도 이제는 맛 앞에 좀 더 진지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작가는 이 책으로 독자가 조그만 영감이라도 얻으면 더없이 기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영감은 물론 더 큰 영감을 이끌어내는 부싯돌이나 마중물의 역할로도 충분한 것 같습니다. 기뻐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그렇게 받은 영감이 너무 단맛에 길들여진 제 입엔 제법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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